[녹] 연중 제1주간 월요일
입당송
나는 드높은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을 보았네. 천사들의 무리가 그분을 흠숭하며 함께 노래하네. 보라, 그분의 나라는 영원하리라.
본기도
주님, 주님 백성의 간절한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어 저희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시작입니다.1,1-6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4 그분께서는 천사들보다 뛰어난 이름을 상속받으시어,
그만큼 그들보다 위대하게 되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 천사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6 또 맏아드님을 저세상에 데리고 들어가실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7(96),1과 2ㄴ.6과 7ㄷ.9(◎ 7ㄷ 참조)
◎ 모든 천사들아, 하느님께 경배하여라.
○ 주님은 임금이시다. 땅은 즐거워하고, 수많은 섬들도 기뻐하여라. 정의와 공정은 그분 어좌의 바탕이라네. ◎
○ 하늘은 그분 의로움을 널리 알리고, 만백성 그분 영광을 우러러보네. 모든 신들이 그분께 경배드리네. ◎
○ 주님, 당신은 온 땅 위에 지극히 높으신 분, 모든 신들 위에 아득히 높으시옵니다. ◎
복음 환호송
마르 1,15
◎ 알렐루야.
○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알렐루야.
복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4-20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그물도 버렸고 배도 버렸다. 그런 이를 어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예수님의 대답은 Yes다. 물고기를 낚는 보통 어부는 아니지만, 이 젊은이들은 이제 사람을 낚을 것이며, 그런 점에서 그들의 정체성은 여전히 어부다. 제자들의 정체성은 파괴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새롭게 되었다. 그들의 그물이 날아갈 방향 또한 새롭게 설정되었을 따름이다.
제자들에게 주어진 이 구도를, 우리 신앙인의 정체성에 대입해 생각해 본다. 분명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회개는, 기존에 가졌던 삶의 습관과 온갖 고집을 내려놓는 일이다. 그것은 자기 삶을 송두리째 뒤집는 일이기에 괴로우나, 그렇기에 결단과 함께 즉시 이루어져야 한다.(제자들도 ‘곧바로’ 그물을 버리지 않았나!) 하지만 그렇게 이루어지는 ‘버림’을 두고, 마치 우화등선(羽化登仙) 마냥 제 삶의 자리와 단절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물과 배를 버린 제자들은 여전히 어부이되 사람을 향하는 어부로 살기 시작했다. 회개를 말하는 신앙인 또한 새로운 결단과 새로운 지향으로 살아가되, 그것이 펼쳐지는 장소는 자신이 살아왔고, 또 앞으로 살아갈 바로 그 자리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 자신을 다시금 돌아본다. 그물도 배도 버리고 떠나왔다고 자부하면서도, ‘물고기 잡는 어부’의 틀에 갇혀 이전의 내 고집에 붙들려 있진 않은지. 또 반대로 새로운 정체성으로 살아가겠다며 의욕이 앞서다 나만의 의로움으로 파고들고 있지는 않은지···.
예물 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이 제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저희를 거룩하게 하시어 저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루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6(35),10 참조
주님,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저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나이다.
<또는>
요한 10,1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체로 새로운 힘을 얻고 간절히 바라오니 저희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며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는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라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 곧 충만한 계시의 시간에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결정적인 자기 계시’이십니다. 따라서 그분의 말씀과 일거수일투족, 그 행동과 삶을 통하여 왜 그분께서 구세주 하느님이신지, 하느님의 생각과 마음, 하느님 눈에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그분의 제자요 아들딸인 우리는 진정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입니다. 연중 시기는 바로 그러한 시기입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와 그 신비를 차례차례 배워 가며 그분을 만나고 친밀해지는 시간이지요.
오늘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처음으로 하신 일은 바로 제자들을 부르신 일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다른 모든 공적 활동에 앞섭니다. 공동체 형성이 하느님 나라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홀로’가 아닌 ‘더불어, 함께’하는 것, 이것이 하느님의 방식이며, 제자들은 그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합니다. 주도권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우리말 번역도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마르 1,17)가 되라고 하십니다. ‘사람 잡는 어부’라고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잡는 것’과 ‘낚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것은 낚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낚는다는 것은 낚시로 한 마리 또는 몇 마리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며 잡을 때 쓰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더욱 친밀하고 인격적인 환대의 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