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안토니오 성인은 3세기 중엽 이집트 중부 코마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느 날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마태 19,21)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감화되어, 자신의 많은 상속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사막에서 은수 생활을 하였고, 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다. 그는 세상의 그릇된 가치를 거슬러 극기와 희생의 삶을 이어 갔으며, ‘사막의 성인’, ‘수도 생활의 시조’로 불릴 만큼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356년 사막에서 세상을 떠났다.
입당송
시편 92(91),13-14
의인은 야자나무처럼 우거지고 레바논의 향백나무처럼 자라나리라. 주님의 집에 심겨 우리 하느님의 앞뜰에서 우거지리라.
본기도
하느님, 복된 안토니오 아빠스가 광야의 은수 생활로 하느님을 섬기게 하셨으니 저희도 그의 모범과 전구로 저희 자신을 버리고 세상 그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4,1-5.11
형제 여러분, 1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2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그 말씀은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귀여겨들은 이들과 믿음으로 결합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3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4 사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어디에선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5 또 여기에서는,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11 그러니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78(77),3과 4ㄱㄹ.6ㄴ-7.8(◎ 7ㄴ)
◎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마라.
○ 우리가 이미 들어 아는 것을, 조상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것을 전하리라. 주님의 영광스러운 행적과 권능을, 다가올 세대에게 들려주려 하노라. ◎
○ 그들이 일어나서, 제 자손들에게 들려주라 하심이네.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않으며, 당신 계명을 지키라 하심이네. ◎
○ 고집부리고 반항하던 세대, 그 조상들처럼 되지 말라 하심이네. 마음이 흔들렸던 그 세대, 그들의 정신은 하느님께 충실하지 않았네. ◎
복음 환호송
루카 7,16
◎ 알렐루야.
○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나셨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 알렐루야.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에페 6,10-13.18)와 복음(마태 19,16-26)을 봉독할 수 있다.>
복음 묵상
예수님께서는 집으로 들어가셨고, 그곳은 빈자리가 없을 만큼 사람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한편 율법 학자들의 태도 역시 어딘가 꽉 막혀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일을 율법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바라보고 판단합니다. 그런 관점에서는 옳고 그름만이 있습니다. 옳고 그름만 판단하는 이들이 잊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중풍 병자의 절박함이랄까, 중풍 병자를 돕는 이들의 노고 같은 것들이지요. 그것을 볼 수 있었더라면, 함께 걱정하고 함께 기뻐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배려 없는 공간, 공감을 잃은 율법은 답답합니다.
그런 상황을 비집고 가능성을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들것을 든 ‘네 사람’입니다. 그들은 방법을 찾았고, 마침내 지붕을 뜯어내어 중풍 병자와 예수님을 만나게 합니다.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는데, 중풍 병자가 일어나서 집 밖으로 걸어 나갔다는 것을 보면, 누군가는 공간을 만들어 길을 틔워 냈겠군요. 예수님께서는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를 도와주셨고, 길을 틔워 낸 사람들은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답답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방법을 찾고 길을 틔워 내는 군요. 우리는 이것을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예물 기도
주님, 복된 안토니오를 기리며 주님의 제대에 드리는 이 예물을 받으시어 저희가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고 오직 주님만을 찾아 풍요를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마태 19,2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나를 따라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복된 안토니오가 어둠의 세력을 누르고 승리하게 하셨으니 저희도 구원의 성사로 힘을 얻어 악의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중풍 병자의 치유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낫게 하실 뿐만 아니라 죄까지도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죄의 용서를 말씀하신 까닭은 그를 죄의 멍에에서 풀어 주는 것이 그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병이 곧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였습니다(요한 9,2 참조).
몸이 마비되어 이전에 누리던 자유를 빼앗긴 채 죄인으로 낙인찍히는 고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자신의 병고를 조금은 동정해 주는 듯하면서도 죄인으로 낙인찍고 수군덕거리는 주변의 시선은 무시하려고 해도 점점 그의 내면을 파고들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혐오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자신을 단죄한 이웃과 세상을 향한 미움과 분노도 심상치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들것에 싣고 와서는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 예수님 앞에 이르게 한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5). 그 말씀과 행위로 당신께서는 신성 모독자로 낙인찍히시면서도 그를 해방시키시어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되돌려주십니다. 네 사람은 중풍 병자를 구세주께 데려다주었고, 그는 몸과 마음을 회복하였습니다. 그에게 세상은 다시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우리에게도 주님과의 깊은 만남의 시간, 나를 지탱해 준 소중한 가족과 동료들, 새로 만나게 된 감사한 세상에 대한 구원의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구원의 추억과 은총을 빼앗기지 말고 삽시다.
(김동희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