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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미사
[백]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1225년 무렵 이탈리아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몬테카시노 수도원과 나폴리 대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 도미니코 수도회에 들어가 대 알베르토 성인의 제자가 되었다. 1245년부터 파리에서 공부한 성인은 삼 년 뒤 독일 쾰른에서 사제품을 받고 그곳 신학교의 교수로 활동하였다. 그는 철학과 신학에 관한 훌륭한 저서를 많이 남겼는데, 특히 『신학 대전』은 그의 기념비적인 저술로 꼽힌다. 1274년에 선종하였으며, 1323년에 시성되었다.
  입당송
집회 15,5 참조
주님이 그를 지혜와 지식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시어, 회중 가운데에서 그의 입을 열어 주시고, 영광의 옷을 입혀 주셨네.
  본기도
하느님, 복된 토마스를 뛰어난 성덕과 거룩한 학문의 본보기로 세워 주셨으니 저희가 그의 가르침을 깨닫고 그 삶을 본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0,1-10
형제 여러분, 1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2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이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3 그러한 제물로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될 뿐입니다.
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5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40(39),2ㄱㄴ과 4ㄱㄴ.7-8ㄱㄴ.10.11(◎ 8ㄴ과 9ㄱ 참조)
◎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 주님께 바라고 또 바랐더니, 나를 굽어보셨네. 새로운 노래,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을, 내 입에 담아 주셨네. ◎
○ 당신은 희생과 제물을 즐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저의 귀를 열어 주셨나이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라지 않으셨나이다. 제가 아뢰었나이다. “보소서, 제가 왔나이다.” ◎
○ 저는 큰 모임에서 정의를 선포하나이다. 보소서, 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 주님, 당신은 아시나이다. ◎
○ 당신 정의를 제 마음속에 감추어 두지 않고, 당신 진리와 구원을 이야기하며, 자애와 진실을 큰 모임에서 숨기지 않나이다. ◎
  복음 환호송
마태 11,25 참조
◎ 알렐루야.
○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31-35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지혜 7,7-10.15-16)와 복음(마태 23,8-12)을 봉독할 수 있다.>
  복음 묵상
예수님 시대에도 어떤 사람인가 보다는 누구의 자식이고 어느 가문 출신인지가 훨씬 더 중요했나 봅니다. 학벌, 재력, 가문을 따지는 건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이, 특히 가장 가까운 가족을 바라보는 마음에 나의 이기심과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 나라에 큰 벽이 되겠죠. 예수님은 피로 맺어진 가족마저 멀리하며 그 벽을 자신부터 깨트리셨습니다. 요즘은 가족이라고 하면 부모님과 아이 하나 혹은 둘 뿐이며 그나마도 서로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는 경우도 잘 없습니다. 아이들은 학교 공부에 찌들고, 부모님들은 직장 일에 치이다 보니 가족이지만 집안에서 얼굴보기 힘듭니다.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아니 가족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예전이나 별반 차이가 없죠. 내가 어디론가 떠난다 할지라도 결국은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 그곳에는 나를 반겨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들의 마음에 위안을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족의 의미를 다시 세우셨습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하느님 나라 운동에 함께하는 사람은 가족이지만, 나를 낳은 어머니, 피를 나눈 형제라 해도 그 뜻을 같이하지 않는다면 남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나의 이기심과 욕망을 강요하게 될 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가장 먼 사람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물 기도
하느님, 복된 토마스를 기리며 드리는 이 제사를 자비로이 굽어보시고 저희도 그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의 제물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루카 12,42 참조
주님은 당신 가족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세우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살아 있는 빵이신 그리스도의 성체로 저희의 힘을 북돋아 주시니 복된 토마스를 기리는 저희가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사랑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어제 복음에서 우리는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을 모함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구원 기적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기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구마와 치유의 기원에 악이, 그것도 마귀 두목 베엘제불의 힘이 자리하고 있다는 그럴듯한 거짓말을 지어냈습니다. 예수님의 신적 속성과 구원의 업적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낸 거짓말이 그럴듯하면 그 거짓말에 스스로 속아 넘어가 확신하게 됩니다. 그들이 매우 똑똑한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똑똑한 이들도 예외가 되지 않는 ‘거짓말의 신비’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에 대한 이러한 거짓된 이해와 비난이 가족과 친척들조차 장악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친척들은 예수님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듣고는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습니다. 그들은 그분에 대하여 들은 것만 가지고 예수님더러 미쳤다고, 마귀가 들렸다고 단정 지은 것입니다.
예수님과 혈연관계라고 해서 죄와 악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세례를 받고 주님 교회의 일원이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죄악이 저절로 피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거짓과 죄악의 덫에 걸려 비참해진 것을 알고 하느님 자비를 향하여 두 손을 뻗을 수 있을 때, 그리고 용서와 사랑, 구원과 치유를 베푸시는 하느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응답하며 걸어갈 때 우리는 빛 안에서 거듭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3-34).
(김동희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