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교구 여성의 날 이모저모
2025 재의수요일
월간 〈빛〉 4월호 만나고 싶었습니다 - 효성유치원장 홍명희(루갈다) 수녀
2025년 세계 병자의 날 미사
월간 〈빛〉 3월호 만나고 싶었습니다 - 효청원노인복지센터 기순임 소장
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 2025 신년대담
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 2025년 신년 메시지
(요약본) 2025 대구대교구 사제·부제 서품식
어떤 사람들은 유다의 배신에서 예수님 죽음의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만, 오늘 복음만 보면 유다가 배신하지 않았더라도 그 결과는 변함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복음의 증언대로라면, 예수님의 죽음은 오랫동안 기획되었고,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그 분위기를 감지하실 정도였으니까요. 도사린 죽음을 피해 드러나지 않게 발걸음하시던 예수님이, 성전에서 큰소리로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성전이라는 공간, 많은 사람이 바라보는 곳에서는, 아무리 최고 의회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할 수는 없었겠지요. 그것은 죽음을 피하는 방법이었을까요. 아니면 남들이 기획된 죽음을 당신의 뜻대로 결행하는 길이었을까요. 죽음을 기획한 사람들과, 죽음을 결심한 사람 사이에서, 나머지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저울질하며, 안다고 믿는 것 마저도 질문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것을 지적하시지요.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왔는가가 아니라, ‘누가’ 보내셨는가 라고요. 예수님이 하느님을 말씀하시자 마자, 사람들의 혼란은 확신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죽음의 이유는 좀 더 짙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