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작인들의 잔혹함”과 “주인의 무모함” 속에서 예수님의 비유 이야기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소작인들은 왜 이렇게 폭력적일까요? 또 주인은 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종들을 보내고 아들마저 보내어 죽게 만들까요? 소작인들의 잔혹함은 한편으로는 이해될 법도 합니다. 인간이 가진 무한의 욕심과 그것을 채우기 위해 발휘되는 수만 가지의 교묘한 처세술은 현실 중에서도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비유 말씀의 남은 한축, 곧 주인의 무모함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요? 풍랑을 만난 제자들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거센 돌풍이 일어 물이 배에 가득 차, 거의 난파하기 직전이 되었는데도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웁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 4,38)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배의 키를 맡기고 주무신 것은 제자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믿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도 나 자신을 믿지 못할 때 예수님은 나를 믿어 주십니다. 사실 예수님과 닮은 내 마음의 한 단면을 믿으시는 것이고, 내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믿으시는 것일 터입니다. 주인은 놓치지 않습니다. 소작인들의 잔혹함 한편에 하느님 모습대로 지어진 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한 감수성을, 그들이 성령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을 바꿀 1% 가능성을, 주인은 거기에 모든 것을 겁니다.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한 그것, 어쩌면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의 크기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