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란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으면 쉽게 채널을 돌리지 못합니다. 비춰지는 자연 풍경이, 마치 유럽의 저 알프스 산맥에서 마주하는 호수의 풍경처럼 아찔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연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사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상처받아 더 이상 세상을 보고 싶지 않아서, 혹은 내 부끄러움으로 더 이상 가족의 눈을 바라볼 용기가 없어서 자연인이 되기로 선택한 그들의 이야기는 내 마음에 기어코 무언가를 남기고야 맙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것, 또 보고 싶어도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 결코 너만의 경험일 수 없는 까닭입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어는 “보다”입니다. 필립보는 의심하는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초대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부터 그를 보고 계셨습니다. 내가 가서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지만 실은 하느님께서 나를 보아주신 게 먼저입니다. 중세의 신비가 니콜라우스 쿠사누스는 내가 하느님을 보는 시선과 하느님께서 나를 보는 시선이 서로 다른 두 시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내가 무언가를 볼 때마다 하느님께서 단 한 순간도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사랑으로 나를 보고 계셨음을 떠올리는 일입니다. 누군가를 볼 마음이 차갑게 식거나 혹은 그럴 용기가 사라지는 일이 살아온 시간만큼 쌓여갑니다. 갈 곳 없는 나의 시선이 초조함과 불안함이 될 때, 늘 내게 고정되어 있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시선이 위로가 되길 희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