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 살고 있는 로마의 시내를 걷다 보면, 이따금씩 종이 지도를 펼치고서 여행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구글맵이 일상화되면서 해외여행에서도 길을 잃는 일이 비일상이 된 요즘, 종이 지도로 여행하는 일은 꽤나 낭만적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길을 묻기도 하고, 얽히고설킨 골목길의 미로 속에 길을 잃기도 하면서 뜻밖의 멋진 사람, 뜻밖의 멋진 장소를 마주치게 됩니다. 마치 구글맵을 켜 놓은 것처럼 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내 삶의 궤적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좀 덜 힘들고, 좀 덜 상처받으면서 살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듭니다. 내 삶의 종착지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안전하게, 최대한 길을 잃지 않고 도달하고 싶은 건 과한 욕심일까요?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을 보급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는 예수 성심의 심연에서 완전히 길을 잃어버릴 것을 제안합니다. 사실 하느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선하신 분이며, 그분의 계획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완전한 것입니다. 우리 삶은 이미 하느님의 그 완전하고 선한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따라서 필요한 건 내 삶에 대한 계획과 판단을 잠시 보류하는 것, 하느님께 내 삶의 길을 완전히 맡겨 드리는 것, 성령의 바람이 어디로 불고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입니다. 길을 잃을 용기 안에서만 “우연”이란 이름으로 하느님 현존을 불현듯 체험하게 되며, 그때 느끼는 마음의 평화야말로 성령 안에서 다시 태어난 표징이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