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당 봉헌 미사
교구 신청사 축복식 기념 영상
천주교 대구대교구 신청사 축복식 및 역사박물관 개관식
제 112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기념 미사
10월 세계청년대회 월간 캠페인
월간 〈빛〉 10월호 : 밝음에서 밝은 어두움으로
대건중·고등학교 개교 80주년 기념미사
2027 서울 WYD, 대구대교구도 함께 준비합니다
통제 욕구가 강한 성정을 타고났습니다. 시간도, 일도, 인간관계도, 심지어는 사물을 배치하는 방식도 강박적으로 통제하려 합니다.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라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한 그의 사정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집니다. 단순한 돈 욕심 때문이 아닙니다. 상황이 통제되지 않고 있다는 것, 그것이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고, 흘러가는 상황이 내 생각의 질서를 따르지 않을 때, 그 어긋남의 틈새로 불안과 초조가 솟아오릅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인생의 역사』에서 ‘조심’이란 단어에 이끌립니다. “‘조(操)’라는 한자는 세 개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왼편에는 손(手)이 있고, 오른편 아래에는 나무(木), 그 위에는 세 개의 입(口)이 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물론 그 내용을 전적으로 믿어도 좋을지 모르겠으나, ‘손으로 나무 위에 있는 새를 잡는’ 모양을 따른 글자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거기에 ‘심(心)’을 더한 ‘조심’의 뜻은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이 될 것이다. 손으로 새를 쥐다니, 과연 조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통제의 욕구를, 조심의 섬세함이 멈춰 세웁니다. 무엇이든 꽉 움켜쥐려는 본능을, 손으로 새를 쥐는 세심한 마음이 가로막습니다. 새를 너무 꽉 움켜쥐면 자칫 그의 목숨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 생각과 계획을 나의 통제 욕구에 내맡기기 전에, 조심(操心)스러움으로 먼저 하느님의 생각과 계획을 묻는 일이 필요합니다. 사실 그분의 선한 뜻이 이미 내 삶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