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켠에 의문이 듭니다. 간절히 청했는데 받지 못한 이들은 왜 그런가. 어째서 그 사람은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는데 병은 낫지 않았고,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으며, 길은 끝내 열리지 않았는가. 어떤 기도는 오래도록 허공을 맴도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약속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초점이 ‘무엇이든’에만 있지 않습니다. 핵심은 ‘내 이름으로’입니다. 이 말은 기도 끝에 도장을 찍듯,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라는 말만 붙이라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과 방식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라는 초대처럼 들립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에 ‘내 계획’을 들고 들어갑니다. 이미 결론을 정해 놓고, 그 결론을 하느님께 승인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은 내 욕망을 정당화하는 표어가 아니라, 내 욕망을 정화하는 자리입니다. 내 소원이 그대로 관철되는 대신, 내 소원이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 가도록 다듬어지는 곳, 그래서 어떤 기도는 허락으로 응답되기 보다 침묵으로 응답되면서도 우리를 살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약속하시는 최종 목적은 소원 성취가 아니라 기쁨의 충만입니다. 우리 마음이 기쁨 중에 있다면, 이미 우리 기도는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겠습니다. 하느님은 때로 우리가 구한 것을 그대로 주시지 않고, 그보다 더 큰 것을 주십니다. 내가 원했던 것을 얻지 못해도 나를 잃지 않게 하시는 것, 내가 붙잡던 것을 내려놓고도 평화를 누리게 하시는 것, 그것은 ‘덜 받은’ 응답이 아니라, 어쩌면 ‘더 깊이 받은’ 응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