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고백으로 베드로의 신비가적 면모가 드러납니다. 방점은 물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정체성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 붙여진 “살아 계신 하느님”이란 문구야말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의 정수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서 없는 게 아닙니다. 느껴지지 않는다 해서 죽은 게 아닙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 살로 느껴지지 않지만, 하느님은 살아 계십니다. 오히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유명한 말처럼 “나보다도 더 나 가까이서” 살아 계십니다. 만일 내 삶의 역사에서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지 않은 단 한 순간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절대적 어둠과 절대적 무(의미)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 위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래서 교회의 위기는 사제 성소자와 세례자 수의 감소에 있지 않고, 살아 계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결여에 있습니다. 또 살아 있는 모든 창조물에 대한 감수성이 제거되어, 모든 인간 존재와 피조물 안에 깃든 하느님의 연민이 더 이상 공감되지 않을 때, 그때 교회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하느님은 살아 계시고,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하느님의 마음과 하느님의 뜻을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나와 우리 안에 생생히 살아 계신 하느님을 볼 수 있기를, 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살아 있는 그대로, 곧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그 신비가적 시선을 온전히 품은 나이기를,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