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思春期), 한자말을 그대로 옮기면 봄을 생각하는 시기입니다. 몸과 마음에 봄이 찾아왔으니 당사자도 얼마나 괴롭겠냐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붙잡으려 해도, 이미 뜨거워진 몸에서는 마음이 나비처럼 흔들리며 떠다닙니다. 반면 제 몸과 마음은 ‘사동기(思冬期)’, 곧 겨울의 차가움에 붙잡혀 있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쓴웃음이 잣습니다. 이 냉소적 마음은 생각의 자유로움도, 관계의 기쁨도, 기도의 농밀함도, 노동의 열정도 모두 얼려 버립니다. 마치 단단한 껍질로 밀봉된 ‘밀알’로 변해 땅에 떨어지기를 자처한 듯합니다. 마음에 겨울이 찾아왔다는 것, 밀알이 껍질 속에 단단히 숨어들어 땅과 교류하길 거부한다는 것, 모두 일종의 자기 보호 본능입니다. 두려움의 경험들이 삶의 지층에 켜켜이 쌓임에 따라 마음의 평수를 줄였고, 몸도 에너지를 비축하기만 할 뿐 쓰는 법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겨울의 시기에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본다면 하느님은 한 번도 나에게 생존을 명한 적이 없습니다. 인생의 길이는 이미 제한되어 있고, 생존의 투쟁으로만 삶을 꾸려 가기엔 헛헛합니다. 두려움은 생존의 확률을 높일 수는 있겠으나, 거기에 매몰되어서는 이미 내 주위와 내 안에 움트고 있는 봄의 생명력, 곧 하느님의 은총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 신앙은 창조, 은총, 성령을 똑같이 하느님의 ‘선물’로 이해합니다. 이미 주어진 선물을 열어볼 용기만이 내 몫으로 남은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