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를 준비하는 그 시간에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신 듯 당신의 마지막 자리를 정하신다. 마태오는 예수께서 스스로 당신의 마지막을 이끄시는 모습을 부각한다. 유다가 기회를 엿보는 시간, 예수님은 당신의 ‘때’를 선언하신다. 그 때는 단순한 죽음의 시간이 아니라, 배신과 그로 인한 수난을 통과해야 비로소 만나게 되는 부활의 때다. “내가 파스카를 지내겠다”는 말은 운명이 아니라 순명이다. 예수님은 끌려가시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 기어이 건너가시는 분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함께 음식을 나누는 식탁, 같은 그릇에 손을 넣는 친밀함 속에서 배반은 그 민낯을 드러내고야 만다. 그 상처는 너무 깊고 무겁다. 시편의 탄식처럼, 빵을 나누던 벗이 발꿈치를 드는 건, 너무 아픈 일이다. 이 모든 것이 “성경대로” 이루어진 것이나, 유다의 배신은 지워지지 않는다. 하느님의 섭리는 인간의 자유를 지우지 않는다. 구원의 길은 그렇게 인간의 가장 적나라한 배신을 정확히 통과한다. 그 밤, 주님은 고통을 피하지 않으시되, 끝까지 주도권을 잃지 않으신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과 배반 사이에 오늘을 또한 살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