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여라.” 이 말씀은 ‘좋은 게 좋은 것이니, 서로 원수 삼지 말고 좋게 지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복음은 그런 감상적인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원수입니다. 사랑은커녕 용서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원수입니다. 원수사랑은 애써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미국의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말합니다. ‘원수가 없으면 그리스도교도 없다. 문제는 제대로 된 원수를 가지는 것이다.’ 그는 원수가 없는 상황이 오히려 문제라고 말합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살면, 교회에 반하는 적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신앙인이 신앙인으로 살면, 신앙에 반하는 원수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원수가 없다는 말은, 우리가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것과 타협했다는 뜻입니다. 원수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원수는 끝까지 원수로 남을 것입니다. 문제는 원수를 대하는 방식입니다. 세상이 폭력적으로 원수를 대하듯, 그렇게 원수를 대할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방식으로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원수를 대할 것인가? 그 결단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세상의 악과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악을 자비로 이겨내는 것, 그것이 주님이 하신 사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