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사제연수
대구대교구 제1주보 성인,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마리아 축일
2027 WYD 젊은이들을 위한 기도의 날
대구대교구 젊은이 사목 대리구 출범
2월 세계청년대회 월간 캠페인
월간 〈빛〉 2월호 : 식물학자 에밀 타케 신부 _ 가보고 싶었습니다
이윤일 요한 순교 성인 기념 미사 및 선교사제 파견식
대구대교구 신청사 층별 안내
여행 중 우연히 들린 이탈리아 어느 작은 도시의 성당에서 백발의 할아버지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벌써 몇 시간째 고해소에 앉아 계신 듯했지만, 깊은 웃음으로 환대해 주셨습니다. 죄를 하나하나 고백할 때마다 “너무 아름다워! 훌륭해! 아주 달콤한 고백이야!” 이태리 사람 특유의 감탄사를 연신 쏟아 내셨습니다. 제 나약함과 비참함이 뭐가 그리 아름답고, 훌륭하고, 달콤하겠습니까. 내 얼굴에 씌워진 가면을 정직하게 마주보고, 가면을 벗은 맨얼굴을 용기 내어 보여 드렸을 때 하느님께서 나를 어떤 사랑의 온도로 바라보시는지, 신부님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 예수님의 요청 앞에 전제가 붙습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하느님 체험에 대한 기억에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빵을 떼실 때 그분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듯, 저마다 하느님 자비를 체험한 기억을 떠올리며 살도록 우리는 초대되었습니다. “기억”에 해당하는 라틴어 recordatio는 “마음, 심장”(cor)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기억이란, 그때 내 마음의 온도를 떠올리는 일, 그때 내 심장의 박동을 다시 느끼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억은 머리가 아닌 마음을 통과하는 일입니다. 속에서 타올랐던 그때의 그 뜨거운 마음(루카 24,32 참조)을 “기억”하길, “기억”하는 나로 인해 내 가까운 사람도 덩달아 하느님 자비를 체험할 수 있길 희망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