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 전하는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에 대한 성서적 해석과 성모님과 교회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서로 ‘경쟁’하며 오히려 머리를 복잡하게 합니다. 묵상할 수 있는, 묵상해야 할 의미들이 너무 많은 탓에 말과 말이 서로 부딪치며 생각에 해일을 일으키고, 종국에는 되려 어떤 말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생각을 달래고 말을 진정시키며 다시 복음에 집중하니, 문득 예수님도 성모님도 말씀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눈길이 갑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목마르다”, “다 이루어졌다”와 같은 단문의 발화가 예수님 말씀의 전부이며, 성모님은 아예 말씀이 없으십니다. 말이 없다고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 형벌의 비참함과 잔혹함도, 마지막까지 당신 아들 곁에 있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꺾지 못합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순간까지도 성모님께 당신의 가장 귀한 것, 곧 “성령”(숨)을 전하는 데 남은 힘을 기꺼이 바치십니다.(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셨다”, 아니 “숨을 내보내셨다.”) 말이 담아낼 수 없는, 오히려 서로를 향한 깊은 눈길만이 겨우 암시할 수 있는, 예수님과 성모님의 마음과 마음의 교감이 교회를 탄생시킵니다. 서둘러 내뱉는 말들이 흩날리기보다는 예수님의 마음과 성모님의 마음이 먼저 묵상되기를, 하느님을 향한, 서로를 향한, 모든 피조물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저 성모자(聖母子)의 마음과 같기를, 그런 “마음의 공동체”를 우리 안에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