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2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10월 세계청년대회 월간 캠페인
월간 〈빛〉 10월호 : 밝음에서 밝은 어두움으로
대건중·고등학교 개교 80주년 기념미사
2027 서울 WYD, 대구대교구도 함께 준비합니다
우리집에 성모당을 모십니다
9월 세계청년대회 월간 캠페인
저마다의 불행을 저마다의 방식대로 견뎌 내는 게 삶의 진실인 것 같아 씁쓸합니다. 누군가는 이 진실을 너무 어린 나이에 깨달은 나머지 어른 아이가 되는 것 같아 미안하고, 누군가는 불행을 견디는 방식을 마지막까지 찾지 못한 채 그 무게에 짓눌려 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리고, 또 누군가는 불행을 인정하길 거부하며 정신 없이 돌아가는 세상의 흐름에 도피하듯 자기를 던져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저마다의 불행의 이유를 찾으려면 찾을 수야 있겠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창조라는 게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보장해 주는 형태였다면, 이 뒷맛이 개운치 않은 삶의 진실을 굳이 마주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나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바다를 하느님이 없는 장소로 표상했습니다. 요나는 신탁을 거부하며 바다로 도주합니다. 종국에는 바다에 빠져 죽기를 자처합니다. 세상의 험하고 아픈, 황망한 장면들을 숱하게 마주하며 진절머리가 났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느님과 창조를 거부하며 스스로를 절대적 어둠에 내던지는 ‘자기 포기’뿐입니다. 하느님은 요나를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타이르십니다. 사람들과 짐승들의 눈을 보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生)의 의지를 담고 있는, 그 신비롭게 반짝이는 눈을 보게 하십니다. 요나가 끝내 회개했는지, 요나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와 모든 생명 안에서 반짝이는 예수님의 눈을 보도록 나를 초대할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