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법을 완성하는 일이 예수님의 일이였습니다. 마태오 복음은 유다인 출신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이 사실을 전해야 했습니다. 이미 익숙한 율법의 세계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내야 할 새로운 삶의 요구 사이의 긴장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할 것은 ‘행동해야 할 율법’이 아니라, 율법의 ‘본디 의미’입니다. 율법은 어떤 행위의 목록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기 위해 오래 다듬어져 온 마음의 방향이었습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 거리, 그 거리를 어떻게 견디고, 어떻게 건너가며, 어떻게 다시 하나의 자리로 이어 갈 것인가를 묻는 노력의 흔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랑이 놓여 있습니다. 다름을 틀림으로 밀어내지 않고, 그 다름을 품고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조율하는 일. 그 긴 시간의 축적이 율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오랜 축적의 시간을 당신 삶으로 온전히 보여 주셨습니다. 율법은 예수님을 통해 완성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