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사제연수
대구대교구 제1주보 성인,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마리아 축일
2027 WYD 젊은이들을 위한 기도의 날
대구대교구 젊은이 사목 대리구 출범
2월 세계청년대회 월간 캠페인
월간 〈빛〉 2월호 : 식물학자 에밀 타케 신부 _ 가보고 싶었습니다
이윤일 요한 순교 성인 기념 미사 및 선교사제 파견식
대구대교구 신청사 층별 안내
사람들은 묻고 따지고 확인하고 싶어 한다. 궁금한 것이나 모호한 것을 그대로 두는 일을 좀처럼 견디지 못한다. 모르는 것을 모른 채 두는 것은 곧잘 ‘틀린 것’이 되어 버린다. 우린 틀리지 않아야 하고, 그러므로 정답을 획득해야만 한다. 예수님이 당시의 세대를 두고 악하다고 말씀하신 건, 묻고 따지고 알고 싶어하는 지적 욕구 때문이다. 예수가 누구인지, 그가 참으로 신적인 존재인지 묻고 따져서 확인하고픈 바람은 예수님 시대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알고자 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그 앎이 절대적이거나 확정적이라 여길수록 앎은 ‘다른 것’에 대해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사건과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대부분은 애초에 기대하지도, 알고자 하지도 않았던 그야말로 ‘다른 것’들일 텐데, 그럼에도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끝내 자기 인식 구조 안으로 끌고 들어와 명확한 의미와 답을 부여하려 든다. 불확실함을 견디지 못해 서둘러 규정하는 것은 때로 옹졸하거나 무지한 일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요나의 표징적 사건을 빗대어 당신의 부활 사건을 미리 알려 주신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우리는 부활을 알고자, 이해하고자 무던히도 묻고 따졌다. 그러나 모르는 일은 모르는 것으로 두면 어떨까… 부활은 우리의 이해 너머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이었다. 우리의 앎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미, 그리고 여전히 벌어지는 부활 사건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뒤흔들고 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하느님은 태초부터 영원히 우리 안에 살아 계시고 움직이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