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차분함 앞에 바리사이들의 흥분은 더욱 고조되고, 간음한 여인의 불안은 점차 누그러집니다. 예수님은 땅에 글씨를 쓰십니다. 땅에 쓴 글씨가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곧 사라지듯,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셨을까요? 두 번이나 “몸을 굽히셨다” 합니다. 몸을 굽히는 일은 땅을 마주하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은 “땅”에 집중됩니다. 모든 창조물을 통해 주님을 찬미한 프란치스코 성인은 오직 땅만을 어머니로 불렀습니다. 해는 형제요, 달과 별은 누이이지만 오직 땅만 어머니라 불릴 만합니다. 땅은 어머니입니다. 모두를 받아 안고 용서합니다. 탕자의 비유를 해석한 렘브란트의 그 유명한 그림에서, 돌아온 둘째 아들을 끌어안는 아버지의 한 손이 여성의 보드라운 손으로 묘사된 것은 결정적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이를 차별 없이 지탱하고 지지하는 가장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땅이며 어머니입니다. 간음한 여인은 단순히 주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인물 그 이상입니다. “땅”을 평생의 묵상 재료로 삼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땅이 되어 주도록 초대받은, 그리스도의 또 다른 제자이며 사도입니다. 우리가 매일 밟고 서 있는 이 땅은 이제 우리에게도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땅을 밟을 때마다 땅을 닮은 하느님의 마음을 묵상하라고, 나도 누군가에게 단단하고 부드러운 땅이 되어 주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