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대림 제1주간 목요일
복음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21.24-2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4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25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주님’을 부르고 ‘말씀’을 듣는 것이 개인의 성숙이나 영적 깨달음으로 치부해 자신의 삶을 가꾸는 것으로 이해해 버리면 오늘 복음은 너무나 진부한 말씀이 되어 버린다. 주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은 아직 반쪽의 일이고 남아 있는 반쪽은 실천의 자리에서 고민해 보아야 한다.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 오늘 복음은 이 질문을 집 짓는 일에 빗대어 설명한다. 폭풍에 견디는 튼튼한 집은 잠언 10,25의 영향인 듯싶다. “폭풍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토대 위에 서 있다.” 주님의 말씀을 실천한다는 것이 의로운 삶을 지향하는 것이라 가정할 수 있겠는데 ‘어떤 실천’은 ‘의로움이 무엇인가’로 다시 묻게 된다. 마태오 복음은 율법 학자들 보다 더 큰 의로움을 황금률로 정리한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남’이라고 번역된 그리스말은 ‘인간’을 가리키는 ‘안트로포스’다. 신약 성경은 인간 일반을 가리키는 이 말마디를 육체적 나약함과 한계, 그리고 죽음에 짓눌린 인간의 슬픈 현실을 가리키는 데 자주 사용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간은 인간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홀로 생존하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간다. 생존하기 위한 외로운 투쟁이 아니라 함께 보듬고 위로하기 위해 인간은 삶을, 생명을 고민하고 설계한다. 인간인 우리는 서로를 부르는 일로 주님을 부르고 그것으로 ‘공동의 집’을 바위 위에 지어 간다. 하늘 나라는 그렇게 커지고 튼튼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