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대림 제2주간 목요일
복음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11-1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12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13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14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15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세례자 요한은 유다 서민들에게 칭송을 받은 인물이다. 메시아 시대를 알리는 참된 예언자, 나아가 메시아 자체로 인식될 정도로 요한에 대한 신뢰는 두터웠다. 그럼에도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로 세례자 요한을 소개하는 마태오 복음의 의도는 무엇일까. 아마도 하늘 나라는 사회적 권력도, 개인의 능력도 아닌 서로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이루어진 세상이기 때문 아닐까. 사랑 앞에 사람은 차별이 없고 구별이 없다. 사랑은 초월적이며 무한하다. 하늘 나라가 폭행을 당하는 이유는 사랑보다는 소유욕으로, 사랑보다는 인정구걸에 탐닉하는 우리 탓이 아닐까. 마태오 복음은 진심을 다해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촉구한다.
그럼에도 사랑이 무엇일까, 묻는, 꽤나 상투적인 질문에 우린 선뜻 답하질 못한다. 19세기 프랑스 문인 보들레르는 사랑을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복음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예언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교회의 목소리를 듣고,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그래서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부족하고 편협한지 되돌아보는 일, 그게 사랑이다. 내가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나를 무한히 끌고 가도록 여전히 배울 게 너무 많은 사람이라 스스로 고백하는 일, 그게 하늘 나라에 살아가는 이의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