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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 복음묵상
[홍]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복음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2코린 10,17―11,2)와 복음(마태 25,1-13)을 봉독할 수 있다.>
  복음 묵상
출근길에 길을 건너는 아이를 만났습니다. 건널목 앞에서 차를 멈추고 기다리는데, 아이는 저를 빤히 보며 천천히 걷고 있었습니다. 제 뒤에 기다리는 차는 늘어났지요. 아이는 그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점점 더 느리게 걸었습니다. 아이는 교통법에 의지하여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제 기다림을 강제했습니다. 일종의 놀이였던 셈이지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아이는 권력자였습니다. 그런 놀이는 누가 가르쳐 주었던 걸까요. 본능이라면 소름 끼치는 일이고, 어른들에게 보고 배웠다면 서글픈 일이겠지요. 
아이들의 모습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거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쪽에서는 피리를 불고, 한쪽에서는 곡을 합니다. 왜 피리를 부는지, 왜 곡을 하는지. 가르쳐 주는 어른들은 없었을까요. 아니, 가르쳐 줄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요한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이유를 묻지 않는 이들, 사람의 아들이 먹고 마시며 죄인들과 어울리는 이유를 따지지 않는 이들이었으니까요. 누군가의 행동을 비난하기보다 먼저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었다면 아이들이 어떠했을까요. 
말씀 앞에서 조용히 다짐합니다. 누군가 피리를 불 때, 춤을 추지는 못해도 함께 흥얼거릴 줄 아는 사람, 누군가 곡을 할 때 잠시 멈추어서 기도할 줄 아는 사람, 누군가의 행동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 저부터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