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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 복음묵상
[녹]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9-28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에페 4,1-7.11-13)와 복음(마태 23,8-12)을 봉독할 수 있다.>
  복음 묵상
예수님 시절, 유다 사회는 메시아를 기다렸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살고 가신 이후에도 유다 사회는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메시아에 대한 기대는 사제, 레위인, 그리고 바리사이들 모두에게 공히 유효한 질문이었다. 그들이 가진 메시아에 대한 이해는 달라도 너무 달라 늘 갈등과 대립을 불러일으켰지만, 메시아 그분을 기다리는 데는 한마음이었다. 
메시아를 찾는 이들의 질문은 이러했다. ‘너는 그리스도냐?’, ‘너는 엘리야냐?’, 혹은 ‘너는 그 예언자냐?’ … 세례자 요한이 메시아인지 확인하는 데 필요한 질문이겠으나, 메시아로 받아들이기 힘든 그들의 의심이나 거부감이 짙게 배어져 있는 질문이기도 하겠다. 유다 사회에서 메시아는 엘리야의 재림으로부터, 모세와 같은 대단한 예언자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그 믿음에 부합하는 인물인지 아닌지 점검이 필요했으므로.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건, 실은 다른 것들로부터 배타적이 된다는 위험을 내포한다.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강할수록 나만의 메시아를 그려 내는 일에 열심일 테고, 열심할수록 다른 이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메시아에 둔감하거나 대립한다. 2000년 전 우리가 주님을 죽인 이유는, 우리가 바라는 메시아가 너무 뚜렷했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 우리가 메시아와 함께 있는 이유는 메시아를 여전히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모르기에 다시 묻고 다시 고민하고 다시 찾아 나서는 간절함이 우리의 신앙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