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복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9-34
그때에 29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역사의 예수님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는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복음에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를 암시하는 몇몇 대목이 나오지요.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마르 1,9-11; 마태 3,13-17; 루카 3,21-22)이나, 요한의 제자였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메시아로 고백하는 장면(요한 1,29-42)도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를 규명하는 사람들은, 네 복음서의 언급을 이렇게 해석하곤 합니다. 세례자 요한을 따르는 이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일종의 경쟁관계에 있었다. 복음서를 쓴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를 정리하고자 했다. 말하자면, 오늘 복음 이야기는 그런 노력의 결과물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겠지요. 복음서가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복음서가 쓰여질 당시에도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을 세례자 요한의 세례 운동의 연장선상에 두고 보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만큼 세례자 요한의 광야 운동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이, 역사적으로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는 추정과 해석이 오갈 뿐 알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남겼다는 그 말은 우리의 믿음을 이끌고 있군요. 이즈음해서, 질문은 멈추고 요한의 말길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예수님을 바라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