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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 복음묵상
[녹] 연중 제2주간 월요일
  복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유다인에게 단식은 중대사였다. 그들은 기도, 자선, 그리고 단식을 걸을 길로 삼았는데, 이는 경건함을 이루는 삶의 방식이자 임박한 종말을 잘 준비할 수단이었다. 문제는 길과 목적지를 혼동할 때 발생했다. 자신의 길을 충실히 걸어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열정이 넘쳤기 때문일까. 그들 눈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목적지를 향할 의지를 지니지 않은 이들로 비쳤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이 더없이 소중히 여기는 수련의 길을 걷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노력일지라도 하느님 나라로 향하고 있다는 설렘, 하느님 나라가 가져다 줄 은총을 잊는다면 의미가 없다. 열정과 실천은 좋으나, 그것이 고집과 강박이 되어 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본말전도(本末顚倒)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집을 버리십시오! 하느님 나라가 가져올 결과가 무엇인지, 거기서 피어날 기쁨이 무엇일지 먼저 생각하십시오!’ 심판의 자리에 앉아 짐짓 근엄한 표정만 짓고 있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다른 이들과 함께 기뻐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하느님이 마련하신 구원은 근본적으로 잔칫상이니 말이다.
오늘도, 나는 나와 다른 이웃을 ‘한 잔치에 초대받은 이’가 아닌 ‘불청객’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그 마음의 끝자락에는 내가 가장 옳다는 독단이 있지 않는가. 그렇게 보면, 남 비판할 때는 아니다. 더 열고 더 이해해 보는 그 고생길에 오늘도 발 올릴 수 있길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