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 연중 제3주간 목요일
복음
<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21-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1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가진 자가 더 가지고 가진 것 없는 자는 더 뺏길 것이라는 논리는 거북하다. 왜 거북한가. 없는 이에게 더 많이 퍼주는 게 복음의 가치라 여기는 의식 때문일까, 아니면 가진 자에 대한 질투, 없는 자에 대한 연민 때문일까.
우리가 복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위계적이다. 우리는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지 나눔을 받는 입장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를테면, 가난한 이에게 적선을 하는 건 신앙의 이름으로 자연스러운 일이겠으나 가난한 이가 내 형제, 자매로 함께 살아가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린 적어도 가난하지 않아야만, 불쌍하지 않아야만 하는 목적 의식을 당위로 짊어지고 있다.
만약, 가진 것을 경제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닌 사랑, 평화, 정의, 혹은 선의, 자비, 용서 등의 말마디로 바꾸어 놓으면 어떨까.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 더 많은 사랑을 주고 받을 것이고 사랑이 적어 완고한 사람이 받은 사랑마저 빼앗길 것이라고 한다면?
누구는 돈의 유무로, 누구는 권력의 유무로, 또 누구는 명예의 유무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이면 되었다. 내 앞에 ‘사람’이 있으면 내 앞에 ‘하느님’이 계신 것이고, 하느님을 보는 이들은 우주의 모든 것을 이미 얻은 것이니 몇몇 가지 있고 없음으로 세상을, 사람을 규정하고 판단할 이유는 없다. 지금 나와 살아가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얻어 누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다. 이 사람 말고 저 사람, 이것 말고 저것을 찾아 나서다 우리는 빈털터리로 세상을 마감할 수 있음을 또한 기억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