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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미사
[녹] 연중 제3주간 토요일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입당송
시편 96(95),1.6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존귀와 위엄이 그분 앞에 있고, 권능과 영화가 그분 성소에 있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를 자애로이 이끄시어 사랑하시는 성자의 이름으로 저희가 옳은 일에 힘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설계하시고 건축하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1,1-2.8-19
형제 여러분,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2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8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9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10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1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12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13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14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15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17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18 그 외아들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9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루카 1,69-70.71-72.73-75(◎ 68 참조)
◎ 찬미받으소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주님은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 우리를 위하여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힘센 구원자를 세워 주셨네.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으로,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하셨네. ◎
○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라. 그분은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네. ◎
○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대로, 우리가 원수들의 손에서 풀려나, 아무 두려움 없이,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게 하셨네. ◎
  복음 환호송
요한 3,16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 알렐루야.
  복음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35-41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거센 돌풍과 강한 물결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타고 있던 배에 들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고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그들은 간절하게 예수님을 깨웠고, 예수님의 한마디에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됩니다.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게 만드는 예수님의 권위는 그분께서 세상 만물의 질서와 법칙의 주인이심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오늘날에는 인간의 과학 기술이 세상 만물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A.I.와 로봇 기술, 그 밖에 수많은 과학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앞으로의 인간은 뭐든지 할 수 있고, 또 뭐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때로는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만물의 질서와 법칙, 그리고 거기에 담긴 가치조차 인간이 스스로 재정립하려는 듯한 느낌을 받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내면의 불안정함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물리적인 발전과는 대조적으로 사회 안에서 공허함, 좌절감, 불안함과 고립감은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복음의 제자들을 다시금 보았으면 합니다. 그들에게 거센 돌풍을 예측하고 막아 낼 과학 기술은 없었지만 예수님께서 만물의 주인이시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두려움과 불안함은 평화와 믿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예물 기도
주님, 저희 예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거룩하게 하시어 이 제물이 저희를 위한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4(33),6 참조
주님께 나아가면 빛을 받으리라.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또는>

요한 8,12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자의 살과 피로 저희를 기르시니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은총으로 저희가 언제나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와 복음은 믿음에 대하여 말합니다. 때때로 믿음은 우리에게 오감과 경험으로 인지하는 것을 넘어서게 합니다. 부르심을 받고 믿음으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히브 11,8) 아브라함과, 아이를 가질 수 없고 나이까지 많음에도 믿음으로 아들을 낳은 사라가 전형적인 예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마르 4,35)으로 건너가자고 초대하십니다. 군중을 가르치시면서 하루를 보내신 뒤 피곤하시어 돌풍으로 요동치는 배 안에서까지 곤히 주무시면서도 왜 예수님께서는 그냥 머무르시던 자리에서 쉬시지 않고 늦은 시간에 굳이 ‘호수 저쪽’으로 가자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것을 요구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호수 저쪽’으로 부르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새로운 삶, 공동체의 쇄신, 새로운 임무를 향하여 익숙하고 안정된 현실을 떠나 돌풍이 몰아치는 밤에 위험을 감수하고 떠나라며 부르시는 경우입니다. 그때 요구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주님 말씀에 대한 신뢰, 특히 그분께서 그 위험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 하나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호수 저쪽으로 떠난 이유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히브 11,10)입니다. 믿음의 본질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인간적인 것을 무시하는 데 있지 않고, 영원한 궁극적 가치를 향하는 데 있습니다. 구약의 성조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11,16)하였다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밝혀 주는 대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과연 그 믿음대로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11,16).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