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아가타 성녀는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는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고자 평생을 동정으로 살았다. 아가타는 철저하게 동정을 지키려다가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249-251년) 때 그를 차지하려던 지방 관리에게 혹독한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녀에 대한 공경은 초대 교회 때부터 널리 전파되었다.
입당송
보라, 이제 순결한 예물, 정결한 희생 제물인 용감한 동정녀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양을 따른다.
<또는>
복된 동정녀는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짊어져, 동정녀들의 신랑이며 순교자들의 임금이신 주님을 본받았네.
본기도
주님, 복된 아가타는 동정과 순교의 영광으로 교회를 빛냈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신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2,4-7.11-15
형제 여러분, 4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5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시면서
내리시는 권고를 잊어버렸습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12 그러므로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13 바른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14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아무도 하느님의 은총을
놓쳐 버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또 쓴 열매를 맺는 뿌리가 하나라도 솟아나 혼란을 일으켜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더럽혀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3(102),1-2.13-14.17-18ㄱ(◎ 17ㄱㄴ)
◎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머무르리라.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 아버지가 자식을 가여워하듯,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 가여워하시네. 우리의 됨됨이를 익히 아시고, 우리가 한낱 티끌임을 기억하시네. ◎
○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머무르고, 그분의 의로움은 대대손손, 그분 계약을 지키는 이들에게 이르리라. ◎
복음 환호송
요한 10,27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 알렐루야.
복음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코린 1,26-31)와 복음(루카 9,23-26)을 봉독할 수 있다.>
복음 묵상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말합니다. “저 사람은 목수가 아닌가?”(마르 6,3 참조) 목수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텍톤’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을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 기술자일 수도 있고, 단순한 일을 하는 잡역부일 수도 있습니다. ‘텍톤’이라는 말로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땀 흘려 일하며 생계를 꾸려 나가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생각할 때, 주로 공생활만 기억합니다. 복음서의 대부분이 예수님의 공생활을 증언하니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공생활 전 삼십 년의 삶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삼십 년간이나 우리와 똑같이 평범한 삶을 사셨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의 삶이 특별할 것 없고 보잘것없어 보일 때, 예수님도 나자렛에서 나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 내셨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도 묵묵히 살아 내신 일상입니다.
예물 기도
주님, 일찍이 박해와 싸워 이긴 복된 아가타의 생명을 제물로 기꺼이 받아들이셨듯이 그를 기리며 드리는 이 예물도 어여삐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성인 감사송 1 : 성인들의 영광>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성인들 가운데서 찬미를 받으시며 그들의 공로를 갚아 주시어 주님의 은총을 빛내시나이다.
또 성인들의 삶을 저희에게 모범으로 주시고 저희가 성인들과 하나 되게 하시며 그 기도의 도움을 받게 하시나이다.
저희는 이 위대한 증인에게서 힘을 얻고 악과 싸워서 승리를 거두고 나아갈 길을 끝까지 달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과 함께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광의 월계관을 받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성인들의 무리와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묵시 7,17 참조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그들을 생명의 샘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성인들 가운데 복된 아가타에게 동정과 순교의 두 월계관을 함께 씌워 주셨으니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모든 악을 용감히 이겨 내고 마침내 천상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처음과 마지막 부분에 ‘놀라다’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다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에 대한 놀라움은 그 놀라움의 이유가 되시는 분에 대한 찬미로 이어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오히려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뒤틀린 감정을 가집니다.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은 무엇일까요? 자신들의 경험과 스스로 안다고 믿는 생각의 틀입니다. 삼십여 년 동안 한동네에서 살아온 사람을 겉으로만 아는 얄팍한 이해의 한계로, 또 목수는, 마리아의 아들은, 야고보와 유다의 형제는 그렇게 훌륭한 가르침과 기적의 능력을 지닐 수 없다고 믿는 편견으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자주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상 안에서 비범하고 초자연적인 것, 곧 은총을 주십니다.
아픔이 낫기를 바라는 사람의 믿음은 치유자의 능력을 활발히 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마르 6,5)라는 말은, 치유가 일방적으로나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니라 믿음을 통한 쌍방의 상호 작용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앓는 사람을 ‘모두’ 고쳐 주신 예수님의 보편적 능력이 고향에서는 “몇몇 병자”(6,5)에게 한정됩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마태 9,29)라는 말씀과 달리 그들에게는 믿지 않는 대로 되었습니다.
익숙한 것을 하느님 안에서 새롭게 보는 능력, 스스로 안다고 여기는 대상을 지금 이 순간 보이는 대로 새롭게 바라보는 능력을 청합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