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더보기
슬라이드배경

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미사
[녹] 연중 제7주간 수요일
  입당송
시편 13(12),6 참조
주님,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새기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주님께서는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신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4,11-19
11 지혜는 자신의 아들들을 키워 주고 자신을 찾는 이들을 보살펴 준다.
12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고
이른 새벽부터 지혜를 찾는 이들은 기쁨에 넘치리라.
13 지혜를 붙드는 이는 영광을 상속받으리니
가는 곳마다 주님께서 복을 주시리라.
14 지혜를 받드는 이들은 거룩하신 분을 섬기고
주님께서는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신다.
15 지혜에 순종하는 이는 민족들을 다스리고
지혜에 귀 기울이는 이는 안전하게 살리라.
16 그가 지혜를 신뢰하면 지혜를 상속받고 그의 후손들도 지혜를 얻으리라.
17 지혜는 처음에 그와 더불어 가시밭길을 걷고
그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몰고 오리라.
지혜는 그를 신뢰할 때까지 자신의 규율로 그를 단련시키고
자신의 바른 규범으로 그를 시험하리라.
18 그러고 나서 지혜는 곧 돌아와 그를 즐겁게 하고 자신의 비밀을 보여 주리라.
19 그가 탈선하면 지혜는 그를 버리고 그를 파멸의 손아귀에 넘기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9(118),165.168.171.172.174.175(◎ 165ㄱ 참조)
◎ 주님, 당신 가르침을 사랑하는 이에게 평화가 넘치나이다.
○ 당신 가르침을 사랑하는 이에게 평화 넘치고, 그들 앞에는 무엇 하나 거칠 것이 없나이다. ◎
○ 제가 가는 모든 길 당신 앞에 있기에, 당신의 규정과 법을 저는 지키나이다. ◎
○ 저에게 당신 법령을 가르치셨기에, 제 입술이 찬양을 쏟아 내나이다. ◎
○ 당신 계명이 모두 의롭기에, 제 혀가 당신 말씀을 노래하나이다. ◎
○ 주님, 당신 구원을 애타게 그리나이다. 당신 가르침이 저의 즐거움이옵니다. ◎
○ 이 목숨 살려 당신을 찬양하게 하소서. 당신 법규로 저를 도와주소서. ◎
  복음 환호송
요한 14,6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알렐루야.
  복음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38-40
그때에 38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사도행전 19장은 바오로가 에페소에서 겪었던 일을 전합니다. 바오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치고 마귀도 쫓아내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다인 구마자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령을 쫓아내려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시도는 실패로 끝납니다. 그들은 악령을 쫓아내기는커녕, 오히려 악령 들린 사람의 공격을 받고 도망칩니다.(사도 19,13-16 참조) 
오늘 복음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 결과는 다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요한은 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지 못 하게 말립니다. 마귀를 쫓아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단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그 사람을 말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라 말씀하셨지만, 사실은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떤 사람이 마귀에서 풀려났다면, 그 일은 좋은 일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살리는 좋은 일이 일어났다면, 그 일을 굳이 말릴 필요가 있을까요? 제자단에 속하고 말고의 문제보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구를 살리는 일인지, 선한 결실을 맺는 일인지 그것부터 먼저 성찰해 보면 좋겠습니다.
  예물 기도
주님, 이 신비로운 제사를 정성껏 거행하며 간절히 청하오니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헌하는 이 제물이 저희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9,2-3
주님의 기적들을 낱낱이 전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당신 이름 찬미하나이다.

<또는>

요한 11,27 참조
주님, 저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이 거룩한 제사에서 구원의 보증을 받았으니 저희가 실제로 그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우리 가운데 자기 집단 중심의 사고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수에게 유익한 일이나 공동선 자체를 추구하기보다는 자기 집단이 그 선을 행하고 인정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 다른 집단을 견제하고 비난하는 이른바 진영 논리를 앞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승을 자기들이 독차지해야 한다는 듯 자기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스승의 이름으로 좋은 일을 하는 것을 견제하는 제자들의 옹졸함과 반대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지지자로 여기시는 예수님의 관용이 대조적입니다.
사실 누가 선을 행하는지보다는 선이 행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이, 공동선이 실현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사람은 명시적으로 예수님의 일행이 아니라 해도 예수님을 믿었기에 그분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그리스도인들만의 것이 아니고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한 이름입니다.
칼 라너가 말한 ‘익명의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듣지 못하였거나 스스로 그리스도 신앙을 부정하거나 무신론자라고 해도 삶으로 복음과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일치에 대한 가르침에 이바지하기도 한 이 표현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표현입니다. 한편으로는 본인의 종교나 종교적 신념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아닐지라도 복음과 예수님을 위한 실천으로 인간의 구원에 협력하는 이는 예수님께 지지자로 인정받으리라는 희망을 드러냅니다. 누구에 의해서든 복음의 가치가 널리 퍼져 가기를 바라고 기도합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