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 연중 제7주간 목요일
입당송
시편 13(12),6 참조
주님,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새기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주님께 돌아가기를 미루지 마라.>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5,1-8
1 재산을 믿지 말고 “넉넉하다.”고 말하지 마라.
2 너 자신과 네 힘을 붙좇지 말고 마음의 욕망을 따르지 마라.
3 “누가 나를 억누르리오?” 하고 말하지 마라. 주님께서 기필코 징벌하시리라.
4 “죄를 지었어도 내게 아무 일도 없었지 않은가?” 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분노에 더디시기 때문이다.
5 속죄를 과신하지 마라. 죄에 죄를 쌓을 뿐이다.
6 “그분의 인자함이 크시니 수많은 내 죄악이 속죄받으리라.”고 말하지 마라.
정녕 자비도 분노도 다 그분께 있고 그분의 진노가 죄인들 위에 머무르리라.
7 주님께 돌아가기를 미루지 말고 하루하루 늦추려 하지 마라.
정녕 주님의 분노가 갑자기 들이닥쳐 너는 징벌의 날에 완전히 망하리라.
8 부정한 재산을 믿지 마라. 정녕 재난의 날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2.3.4와 6(◎ 40〔39〕,5ㄱㄴ)
◎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복음 환호송
1테살 2,13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말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라.
◎ 알렐루야.
복음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41-5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42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4)
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6)
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49 모두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죄와 불의에 대한 단호한 심판은 필요합니다. 심판이 명확하고 분명할수록 우리는 정의를 이루었다는 얼마간의 만족감을 느낄 테지요.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죄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십니다. 손과 발과 눈이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과감히 잘라 버리라는 다소 차가운 말씀에 긴장감마저 맴도는 복음입니다.
죄와 불의를 끊어 내는 것으로 정의를 이루었다는 관점은 스스로 죄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윤리-도덕적 신념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 신념은 세상을 흑과 백, 선과 악으로만 바라보는 이원론적 배타성을 지닐 위험을 내포하기도 합니다. 가령, ‘너는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 해’라는 비판의 끝이 죄인의 ‘내일’을 무참히 삭제하고 자신의 비판에 대한 정당성에 취해 있을 경우가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 죄와 불의에 단호한 입장을 취하신 것은 의인만을 위한 나라를 꿈꾸기 때문이 아닙니다. 죄인이 돌아와 회개하길 바라는 초대가 복음이 지향하는 하느님 나라의 자비와 은총입니다. 오늘 복음은 의인이 더욱 의롭게 살기를 바라는 목적에서 쓰여진 게 아니라, 스스로 의인이라 자처하며 작은 이, 버림받은 이, 나에게 못마땅한 이를 죄짓게 하는 자들의 배타적 정의감을 비판하는 관점에서 쓰여졌습니다.
하느님 앞에 우리 모두는 부족하고 부족하니 이런저런 실수를 저지릅니다. 서로를 향해 용서와 자비를 베푸는 것으로 우리의 비판은 죄인의 ‘내일’을 꿈꾸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행여 다른 이를 심판하며 단절과 외면의 삶으로 저 혼자 홀로 의롭다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입니다.
예물 기도
주님, 이 신비로운 제사를 정성껏 거행하며 간절히 청하오니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헌하는 이 제물이 저희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9,2-3
주님의 기적들을 낱낱이 전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당신 이름 찬미하나이다.
<또는>
요한 11,27 참조
주님, 저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이 거룩한 제사에서 구원의 보증을 받았으니 저희가 실제로 그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는 작은 이에 대한 예수님의 각별한 관심이 두드러집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큰 사랑으로 보상을 받을 것이며 작은 이를 죄짓게 한 사람은 혹독한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의 이 내용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였다가는 세상에 성한 육신을 가진 사람이 남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뜻은 그만큼 죄를 두려워하라는 것이고 육신의 지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죄를 부추기는 원인들, 곧 탐욕, 허영, 교만, 이기심 등을 잘라 내라는 뜻일 것입니다.
어떤 교부는 시각(視覺)의 마차에 올라탄 우리의 생각을 하느님 사랑을 향하여 몰고 가야 한다고, 육적인 시선을 마음의 판단에 복종시키라고 권고합니다. 다른 모든 감각보다도 특히 시각은 범죄 영상물까지 포함하여 온갖 종류의 영상이 지배하는 우리 시대에 각별히 절제해야 할 감각입니다. 절제의 덕은 우리에게 죄에 대한 식별력을 길러 줍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절제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시궁창과 그 얼룩을 잘 알지만 죄악에 빠진 사람은 자기 병세의 심각성조차 깨닫지 못하고 시궁창에서도 향유 냄새가 나는 것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오늘 독서인 집회서가 경고하듯 눈앞의 현실에 몰두하여 주님의 자비와 인내를 과신하거나 남용하지 말고 죄의 무서움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지켜 주는 절제 안에서 서로 평화롭게 지내려면 마음에 소금을 간직해야 하는데,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이 소금이 바로 하느님 말씀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