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복음
<신랑을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14-15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율법이 명하는 단식은 단 하루 뿐이었습니다. ‘대속죄일(욤키푸르)’에 하는 단식이 의무로 주어진 유일한 단식이었지요.(레위 16,29 참조) 그런데 바리사이와 같이 열심한 사람들에게는 일 년에 한 번 하는 단식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단식하고, 그것도 모자란 사람들은 더 자주 단식을 실천했다고 합니다.
단식은 ‘속죄’를 드러내는 방식이었으니, 잦은 단식은 큰 속죄를 드러내는 길이었을까요. 아무튼, 그런 관념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은 한심해 보였겠지요. 유다 사람들에게 단식이 ‘속죄’였다면,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무엇을 의미했을까요.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단식은 슬픔을 드러내는 수단입니다. 다만, 그 수단은 기쁨을 드러내기는 적합하지 않고, 지금 필요한 것이 아닐 뿐이지요.
바리사이와 요한의 제자에게, 신앙은 무엇을 뜻했을까요. 그들의 신앙에는 기쁨을 표현할 만한 것들이 없었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갇혀, 이웃의 기쁨을 이해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슬픔을 강요하고 있군요.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은 기쁨을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