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복음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20ㄴ-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우리말 성경이 ‘의로움’으로 번역하고 있는 단어는, 그리스어 ‘디카이오쉬네’입니다. 이 낱말에 대응되는 현대어는 ‘정의(Justice)’ 혹은 ‘옳음(Righteousness)’입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정의와 옳음이 무엇인지 물어왔습니다만, 모든 상황을 포괄하는 선명한 대답은 아직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대답은 앞으로도 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은 의로움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공동번역 성서의 옮김이 문장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너희가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의로움’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의로움의 이유랄까요. 의로운 삶의 방향성이랄까요. 질문을 바꾸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의 의로움은 자기만족적입니다. 규정을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요. 말이 좋아 자기만족적이지 이기적인 의로움입니다.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의로움은 달라 보입니다. 새로운 의로움은 규정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드러납니다. 자기만족에 머물러서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이웃과의 만남 안에서 이루어져 가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