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입당송
시편 139(138),23-24 참조
하느님, 저를 꿰뚫어 보시고 제가 걸어온 길 살펴보소서. 저의 길 굽었는지 보시고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본기도
하느님,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니 저희 마음에 성령의 불을 놓으시어 굳은 믿음으로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는 저주를 받지만, 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복되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17,5-10
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6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7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8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10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2.3.4와 6(◎ 40〔39〕,5ㄱㄴ)
◎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복음 환호송
루카 8,15 참조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부자와 라자로는 이승과 저승을 두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소개됩니다. 이승에서 편히 쉬고 먹던 부자가 저승에서 물 한 방울조차 마실 수 없는 가련한 존재가 된 이야기는 이집트 민담을 위시해서 수많은 민족 설화들 안에 나타납니다. 이를테면, ‘착한 삶’을 살지 못한 결과가 저승의 고통이라는 것이지요. 라자로의 경우도 같은 논리로 이해하자면, 그가 살아생전 고생했으나 죽어서 편히 쉬고 위로받을 수 있는 건, ‘착한 삶’을 살았기 때문으로 인식할 만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은 여전합니다. 복음은 저승에서 벌어지는 삶의 반전에 대한 이유를 말하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오늘 복음의 한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말을 바꾸면 이렇습니다. 거지일지라도, 값진 음식과 편한 쉼을 얻어 누릴 권리가 있음을, 부자일 때, 배고픔과 간절함의 삶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함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 자신과 너무나 다른 이들이 함께 살아갑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모세와 예언자들은 공정이란 이름으로 가르쳤습니다.
예물 기도
주님, 저희가 이 제사로 사순 시기를 거룩히 지내게 하시고 겉으로 지키는 재계로 마음속 깊이 회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119(118),1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이 거룩한 제사의 힘으로 저희가 끊임없이 선행을 실천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의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
주님, 주님의 도우심을 간청하는 종들을 굽어보시어 주님의 힘으로 보호하시고 이끌어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저승에 간 부자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생각 거리를 전합니다. 저승에서 고통을 받던 부자는 처음에는 자기 처지에만 집중하고, 자신의 고통을 해결해 달라며 소리 지릅니다. 그러나 자신이 고초를 겪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서는 자기 형제들이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관심의 대상이 자신에서 형제들로 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는 형제들에게 죽은 사람이 살아서 가지 않으면 그들이 회개하지 않을 것임을 깨닫습니다.
부자는 저승에서 고초를 겪으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게 됩니다. 부자가 즐겁고 호화롭게 사는 동안, 그의 대문 앞에 가난한 라자로가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심지어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바랐습니다. 만일 부자가 가난하고 병든 라자로에게 마음을 썼더라면,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주신 것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는 라자로가 자기 주위에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유한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이미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루카 6,24 참조). 부자는 자신의 재물로 위로를 받는 데 만족하였습니다. 부자는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사는 것으로 위로받고, 더는 주위를 둘러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자가 저승에서 겪는 고초는 하느님을 본받아 사랑을 실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살았다는 뉘우침의 다른 표현입니다. 살아 있는 형제들이 늦기 전에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기를 바라는 부자의 마음이 우리에게도 전해져야 합니다.
(한창현 모세 신부)